우정힐스CC는 한국골프에서 어떤 골프장인가
우정힐스CC는 한국골프에서 어떤 골프장인가
  • 골프산업신문
  • 승인 2022.11.2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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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본질 가치와 의미의 재발견-

류석무 작가의 대한민국 명작 골프장 해석 (2)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류석무 작가의 글을 연재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골프장들의 이야기들을 상세히 발굴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한국 명작 골프장 해석’은 ‘이야기’보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간 ‘해석’을 통해 새로운 문화 지평을 발견하는 ‘대안 비평’입니다. 한국 최고의 골프장 스무 곳을 차례로 톺아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우정힐스 컨트리클럽(이하 ‘우정힐스’)은 일반 골퍼들보다 골프 전문인들에게 높이 평가받아왔다. 이른바 ‘전문 기관’들이 내는 ‘골프코스 랭킹’에서 이 골프장은 줄곧 국내 최정상권에 들고 있다.

전문인들이 좋아하는 곳이 더 좋은 골프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일반 골퍼들이 라운드 체험의 인상을 감성적으로 투영해 평가하는데 견주어, 전문인(기관)들은 평가 근거와 기준을 세우고 항목과 배점을 체계화해 계량한다. 그런 평가를 다수의 전문인들이 일시에 수행토록하여, 그 합산·판정 결과가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도록 상업적으로 고도화한 방식이 ‘코스랭킹’이다.

평가 항목은 대체로 ‘샷 밸류(샷 옵션)’ ‘난이도(도전성)’ ‘다양성’ ‘기억성(차별성)’ ‘심미성’, ‘개성(고유 독창성)’ ‘코스 관리’ 등이고, 그중 샷 밸류에 2배의 가중치를 주어 합산 계량한다.

‘전통’이나 ‘사회적 기여’ ‘보행 적합성’ 등의 항목을 포함하는 평가도 일부 있었으나, ‘코스랭킹’이라는 말 그대로 골프코스 자체만을 평가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평가 항목과 배점을 보면, 매치플레이 대회를 치르기 좋은 ‘챌린징 코스’에 유리한 방식이다.

‘챌린징 코스’의 본질 가치

가까운 십여 년 동안의 국내 코스랭킹을 보면, 열 손가락에 꼽는 윗자리는 회원권이 시중에 거래되지 않는(초고가) 폐쇄적 클럽들, 수도권 소재 대기업 소유 골프장들이 거의 점유하는 가운데, 자연경관이 빼어난 바닷가 코스 두어 곳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한 정상권에 드는 곳들은 거의 ‘양잔디 코스’들이거나, ‘럭셔리 지향’ 클럽하우스를 자랑하는 골프장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잔디 품종과 클럽하우스는 코스 평가 대상 항목에 들지 않는다. 폐쇄적인 프라이빗 골프장에 유리한 조건도 없다. 평가위원들이 양잔디와 호화로운 클럽하우스, 최고급 프라이빗 클럽의 인상에 감화된 감성적 선입견으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볼 증거는 - 간단없이 제기되어온 의문에도 불구하고 - 없다.)

우정힐스는 이러한 경향과는 다른 길을 걷는 골프장이다.

서울에서 제법 먼 중부 내륙(천안)에 있고, 회원권이 상대적으로 잘 유통되는 클럽이며, ‘한국 잔디’로 불리는 ‘중지’와 ‘야지’로 조성된 코스다. 클럽하우스도(공들여 지었으되) 담백하다.

다소 예외적인 모습이면서도 코스랭킹에서 줄곧 국내 5위 이내에 들고 있는 것은, 우정힐스가 오롯이 ‘챌린징 코스’의 본질 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때문이다.

물론, 우정힐스를 평가하는 데 유리한 선입견을 형성하는 요소들도 있다. 코스랭킹 평가위원들이 다음의 세 가지 사실에 영향받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째, 피트 다이 가문 -그의 큰아들 페리 다이 - 의 설계 코스라는 DNA.

둘째, 한국 골프의 선각자로 불리는 우정 이동찬 회장의 유지를 받드는 골프장이라는 후광.

셋째, 2003년 이래, 대한민국 골프를 대표하는 ‘한국오픈’ 대회를 치러온 코스라는 검증.

다이 가문 Dye Designs - 설계의 족보

우정힐스는 1993년에 문을 열었다. 미국의 거장 설계가 피트 다이 Pete Dye(1922~2020)의 아들 페리 다이 Perry O. Dye(1952~2021)가 이 코스를 설계했다.

코오롱 그룹의 선대 총수이자 골프장 설립자인 고 이동찬(1922~2014) 회장이 ‘다이 가문’에 설계를 맡겼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피트 다이는 잘 알려진 대로, 골프장 설계에서 ‘모던 골프’, ‘타깃 골프’의 변곡점을 찍은 설계가다. 젊은 시절 실력 있는 아마추어 골퍼였던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골프선수였던 부인 앨리스 다이와 함께 코스 설계를 시작해 수많은 명작 코스들을 남겼다.

그가 설계한 코스는 당시(20세기 중·후반) 골퍼들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스타워즈 속 악의 화신 다스 베이더가 설계한 골프장 같다”, 또는 “골퍼를 괴롭히는 게 취미인 사디스트”, ‘Pete Dye’는 ‘Pete Die(사망)를 의미한다”는 악담도 들었다.

최경주와 김시우의 우승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더플레이어스 챔피언십’ 개최지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를 비롯해 PGA웨스트 스타디움 코스, 휘슬링스트레이츠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보다 앞선 세대의 전설적 골프코스 설계가 알리스터 맥킨지 박사 Dr. Alister Mackenzie(1870~1932)는 자신의 저서 ‘골프코스 설계학’에서, 골프코스 설계가에게 필요한 자질로 세 가지를 들었다.

‘골퍼의 마음’ ‘엔지니어의 두뇌’ ‘예술가의 영혼’ - 피트 다이는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실천했다.

아마추어 골프선수 출신으로 골퍼의 마음과 기술을 잘 알았고, 공사 현장에서 직접 중장비를 운전하며 몸으로 설계한 조형 엔지니어였으며, 본질을 통찰하고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영혼을 지녔다.

그는 1963년,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코스들을 두루 돌아보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작고 물결치는 듯한 그린, 굴곡이 심한 지면, 허물어진 벙커 측면을 지탱하는 나무 벽, 깊은 항아리 벙커 등 자연과 인간의 투쟁이 깃든 링크스의 특징 요소들은 그에게 세계 골프 역사를 바꿀 영감을 주었다.

골프는 광활하고 변화막측하며 강한 자연을 상대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많고 복잡한 인공도구를 사용하도록 허락받은 스포츠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그 장비를 활용하는 기술, 두뇌, 담력을 극한까지 시험할 수 있는 골프코스가 필요하게 된다. 그는 스코틀랜드 바닷가 거친 링크스에 강한 바람이 불 때만큼 강렬한 난도 요소들을 모든 코스에 (설계 기술로) 구현하고자 했다.

피트 다이 대표작들은 대부분 평지에 조성되었으나, 그는 평평한 땅에 입체파 회화처럼 강렬하고 기하학적인 3차원 윤곽을 만들고, 깊은 벙커와 호수를 새겨넣었다. 협곡과 바다를 건너고 깎아지른 해안단구 위의 작은 그린을 겨냥하는 듯한 모험의 세계를 평지 위에 구현했다.

샷의 품질 가치(Shot Value)를 정밀하게 변별하고 보상과 응징(Risk & Reward)을 선명하게 부여하는 가운데, 플레이어가 한 샷 한 샷마다 두려움과 도전 의식 사이에서 생각하고 판단하여 실행하도록 했다.

침목 격벽을 세워 자비가 없는 해저드, 호수 너머 작은 그린, 항아리나 긴 손가락 모양의 깊은 벙커, 한 샷 한 샷마다 집중해야 하는 전략적 경로 등 그가 만든 코스 특징들은 당대 프로골퍼들에게 가혹한 스트레스를 주었으나 지금은 토너먼트 코스의 당연한 요소들로 이해된다.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를 비롯한 최고의 선수들이 그것들과 싸워 극복하며 기량을 향상시켜왔다. 또한 세계의 숱한 골프코스들이 그의 디자인에 영향받아 진화해 왔다. 피트 다이에게 가르침을 얻거나 직접 교육받은 설계가는 잭 니클라우스, 톰 독(Tom Doak) 등 숱하다.

페리 다이가 피트 다이를 넘어선 설계가라고 할 수는 없으나, 아버지의 철학과 기술을 정통하게 이어받아 ‘다이 디자인(Dye Designs)’회사를 대표하며, 다이 가문의 설계를 온전히 구현한 계승자로 평가된다.

TPC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가 완성된 해는 1980년이고, PGA웨스트 스타디움 코스는 1986년에 문을 열었다. 페리 다이의 우정힐스 설계 작업은 이러한 다이 가문의 설계 흐름이 1993년 한국으로 이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고 이동찬 회장- “여기서 언더파를 쳐 보라”

당시 40대에 접어들어 야심 왕성하던 페리 다이는 한국의 산야에 자기 가문의 설계 특징을 야심적으로 펼쳐냈다. 침목 격벽으로 경계를 세운 워터해저드와 사람 키보다 훨씬 깊은 벙커 등 다이 가문 설계 코스의 전매특허 같은 요소들이 적용되었다. (지금도 난도 높은 골프장이지만) 우정힐스는 당시 한국 골퍼들에게 놀랍게 어려운 코스였다.

개장하면서 “한국 최초의 웨스턴 스타일”을 표방했는데, 서구적(도전적)인 코스가 낯설던 그때에는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 이동찬 회장이 바다 건너 미국의 설계가,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도전적인 코스를 만드는 다이 가문에 설계를 맡긴 것은, 당시에 대단히 선구적인 모험이었다.

서구 설계가를 부른 국내 최초의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이미 1988년 ‘용평골프클럽’이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의 설계로 문을 열어 서구적 챌린징 코스를 선보이긴 했다.

그러나 용평 리조트라는 휴양 스포츠 단지의 특수 사례로 여기는 분위기였고, 한국 골프의 모범이라 불리던 안양컨트리클럽이 리모델링하기 전이어서, 국내 골프장들은 일본식 투 그린의 평안한 인공 정원형 코스를 정답으로 알던 때였다.

고 이동찬 회장은 1993년 우정힐스를 완공하고, 당시의 정상급 프로골퍼들에게 “여기서 언더파를 쳐 보라”고 호언했다. 그는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사)대한골프협회 KGA 회장을 맡았는데, 이곳에서 ‘한국오픈’ 대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3년부터였다.

이전까지 한양CC에서 열리던 한국오픈이 우정힐스로 장소를 옮기게 된 사연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19세였던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4라운드 합계 23언더파로 한양 신코스를 유린하며 우승하자, 대회 메인 스폰서이던 이 회장이 자존심이 상해서 한국오픈 대회 장소를 우정힐스로 옮기고 “대회 코스 난도를 높여라”고 주문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그는 처음부터 한국오픈 대회를 생각하며 코스를 만들었던 듯하다. 다이 가문에 설계를 맡긴 데서부터, 토너먼트 승부에 적합한 홀 전개 리듬, 18번 홀 그린 주변의 스타디움 구조 등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자기 아호 ‘우정牛汀’을 골프장 이름으로 내걸었다. 자신의 골프 경영 인생과 철학을 한국오픈 장소로 완성하고, 그 작품에 낙관落款을 한(호를 쓰고 도장을 눌러 찍은) 듯한 이름이다.

 

‘매홀 하나의 경기’··· 어려운 코스라기보다 도전적 코스

경관 전망보다는 ‘도전적 게임’을 선택하다

페리 다이는 자기 가문 특유의 도전적 장해 요소들을 한국의 산중 지형에 조화시키려 했다. 우정힐스 터는 노년기 지형의 낮은(해발 150미터) 동산이다.

독립기념관을 품은 흑성산 줄기가 너른 분지를 만나며 완만히 잦아드는 구릉이다. 남쪽으로 탁 트인 분지를, 낮고 먼 산줄기들이 광활하게 에워싸고 있다.

이 유장한 풍광을 두루 조망하도록, 등성이를 타고 홀들을 앉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페리 다이는 골짜기의 흐름에 중점을 두어 활용했다. 장려한 경관을 취하기보다는 경기장 안쪽에 시선을 집중하여 도전적인 게임에 몰두하도록 설계한 의도로 보인다.

1번 홀에 블라인드 홀을 설치한 것에서부터 그 의도가 잘 드러난다. 티샷에서 왼쪽의 동산을 넘기면 그린에 가까워진다. 짧은 홀이지만 장타자의 티샷 낙하지점은 내리막이므로, 어디에 볼을 떨어뜨려야 할지 어프로치 샷을 어떤 클럽으로 할지, 티잉 구역에 들어서기 전부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첫 홀부터 플레이어의 도전을 도발하며 게임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코스의 고저 차는 우리나라 산중 골프장들에 견주어 크지 않다. 아웃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의 해발고도가 137m, 낮은 곳이 105m쯤 된다. 인코스는 높은 곳이 120m, 낮은 곳이 95m 남짓이다.

그런데 이 완만한 등성이와 골짜기가 다이 가문의 설계를 만나 ‘도전! 열여덟 판’의 역동적 경기장이 되었다.

우정힐스 조성 당시 한국 측 실시설계 팀으로 참여한 코스 설계가 송호는 이렇게 말한다.

“피트 다이 설계는 샷밸류와 리스크 앤 리워드의 진수를 보여준다. 우정힐스는 다이 가문의 설계 특성을 한국 산중에 적용한 코스로 변별력이 높다. 매 홀에서 요구하는 샷과 전략이 다르기 때문에 이 코스에서 좋은 점수를 내려면 페이드와 드로우, 높은 샷과 낮은 샷의 구질을 골고루 구사해야 하고, 다양한 숏게임 상황에도 창조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력이 좋은 골퍼일수록 재미를 느끼는 코스다. 나는 우정힐스에 라운드하러 가는 날은 마음이 설렌다. 홀들 하나 하나를 떠올리며 어떤 샷으로 도전할까 상상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도전적 코스’와 골프의 본질

골프코스에서 ‘도전성’을 높은 가치로 보는 까닭은 그것이 골프와 스포츠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골프는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최강자(자연)를 상대로 겨루는 도전이며, 동반자들과 어울린 경쟁 속에서 스스로 깨우치고 북돋는 스포츠다.

절대강자에 도전하기에 숭고하고, 누구나 같은 환경에서 투쟁하기에 공정하며, 강자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서로를 배려함으로써 정의로움을 추구한다.

골프코스에서 ‘도전적’이라 함은, 골퍼가 도전해 극복하도록 설치된 상태, 더 나아가 골퍼에게 도전을 걸어오는 생명체적 유기성을 말한다.

코스에 장해 요소들을 두는 까닭은 골퍼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골프와 스포츠의 본질 -숭고함, 공정함, 정의로움- 을 일깨우는 도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골프를 더 재미있게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플레이어가 어려운 장해물에 도전해 극복하면 반드시 보상과 희열이 있고, 자기 형편에 맞게 장해물을 우회하면 또 다른 매력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때, 모든 골퍼들은 자신의 실력과 성향에 맞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단순히 어려운 것과 도전을 유도하는 난관이 있는 것은 다르다. 잘 만든 도전적 코스는 - 마치 자연과 인생이 변화하는 것처럼 - 다양한 도전 과제를 매홀 매샷마다 제시함으로써 골퍼의 모든 능력이 발휘되도록 한다.

전략적 두뇌, 영웅적인 샷과 세밀한 샷, 공중전과 그라운드 게임, 홀에 도달하는 창의력······ 이 모든 것을 쏟아내게 함으로써 - 드라이버 또는 아이언을 잘 치거나 퍼팅을 신들린 듯이 잘하는 것을 넘어 - 골퍼의 모든 능력과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변별한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도록 북돋는다.

도전적 코스에는 평온한 길도 마련될 수 있지만 평안한 코스는 골퍼의 영혼까지 흔들어 시험하는 모험을 담지 못한다.

‘도전’과 ‘전략’ - 매치플레이의 영혼

우정힐스의 본질 매력은 ‘어려운 코스’라기보다는 ‘도전하는 코스’라는 데 있다.

실력 좋은 골퍼뿐만 아니라 모든 수준의 골퍼들이 재미있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값진 매력이다. 코스 설계자들은 상급 실력자들이 도전하도록 도발하고 초급자에게는 편한 길을 열어주려 노력하는데, 다이의 설계는 - 도전의 난도를 높이 설정하기에 - 약자를 더 많이 배려한 듯하다.

우선, 코스의 길이 배분이 일반 골퍼에게 너그럽다. 토너먼트 티에서 최대 전장이 7225야드(한국오픈, 파71)인데, 일반 골퍼들이 주로 이용하는 레귤러(블루) 티에서의 길이는 6181야드(파72)다.

이는 한국 정규 코스들의 레귤러티 길이보다 약간 짧은 편이다. 레이디 티에서 길이는 4844야드(파72)로 더욱 짧다.

또한 프로 골퍼 수준 장타자들의 도전적인 샷 낙하지점에는 일관되게 더 많은 위협 요소 - 좁아지는 페어웨이, 벙커, 호수 장해물, 비스듬한 라이 - 들을 배치하고 있다. 실수한 샷에 회복 불가능한 응징만 있는 것도 아니다. 깊은 벙커들이 위협적이지만 대개는 치명적인 실수를 완화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코스가 긴 편은 아니고 짧은 홀들도 간간이 나오지만, 짧은 홀에서는 그린 주변 경사와 공략 각도가 까다롭고 큰 실수를 유발하는 함정이 있기에, 장타를 치는 상급자일수록 반드시 세컨샷 위치를 정확하게 설정해 겨냥하고 티샷해야 한다.

이러한 특징들 속에서, 우정힐스는 다이 가문 설계 특유의 ‘매치플레이 코스’ 정체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모든 홀에 도전적 경로와 우회 경로 등 여러 공략 루트가 있어서, 골퍼들마다 자신의 전략과 기량, 스타일에 맞추어, 각자 다른 방법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전략적 설계 코스’라는 뜻이다. 각 홀마다 그 홀의 도전과 전략을 뜻하는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다.

페리 다이는 피트 다이(다이 가문)의 설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 홀마다 하나의 경기다. 그 것이 (다이)코스 설계의 영혼이다.”

13번 홀-벙커를 넣고 ‘짧은 홀의 역설’을 빼다

우정힐스의 ‘시그니처 홀’이자 아일랜드 형인 13번 홀(파3)에 얽힌 사연은 한국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된다.

원래 미국 플로리다 ‘TPC소그래스’ 17번 홀처럼 철도 침목으로 경계를 만들고 그린을 놓치면 공이 그대로 물에 빠지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그린도 작았다.

이 모양은 미국 팜스프링 ‘PGA웨스트’ 스타디움코스 17번 홀에도 재현되어 다이 가문 설계의 상징처럼 알려지는데, 이 설계를 본 고 이동찬 회장이 “너무 가혹하다. 한국 정서에는 여유가 있어야 하니 그린 둘레에 벙커를 만들자”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린 둘레 공간을 넓히고 ‘세이빙 벙커’를 만들어 넣은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특히 이 곳은 바람이 많은 위치를 찾아 만든 아일랜드 홀이다. 아마도 처음 설계에서는 (TPC소그래스 17번 홀처럼) 120미터 안팎의 짧은 홀이었을 것이다.

(짧은 채로 칠수록 볼이 높이 떠서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역설적으로 짧은 파3 홀이 더 어려워지게 된다. 다이는 그런 역설을 아일랜드 홀에서 즐겨 구현하곤 했다.)

 

한국오픈 후원·개최 20년···고 이동찬 회장의 약속

그런데 이 회장의 요청으로 그린 주변 공간을 넓히고 벙커를 넣으면서 다소 긴(한국오픈 티 228야드) 파3 홀로 변경했던 듯하다. 16번 파3 홀의 (대회 티)거리가 248야드나 되고 나머지 파3 홀들도 221야드, 193야드로 긴 편이니, 이 홀이 짧았다면 코스 전체로 보아 균형감과 다양한 재미가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물론 지금 모습에서 -이 회장의 뜻대로- 한국적 풍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수많은 게임의 변수를 만들어내는 홀이다. 2009년 한국오픈 대회에서 당시 일본 최고의 골프스타 이시카와 료가 1, 2, 3라운드에서 연달아 볼을 물에 빠뜨리는 등 유명한 사연을 많이 품고 있다.

(이 홀이 ‘한국 최초의 아일랜드 홀’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미 1985년 용평나인 퍼블릭코스 8번 홀이 아일랜드 형으로 조성된 바 있고, 1991년 문 연 솔모로CC 파인코스 3번 홀 등이 아일랜드 형태를 띠고 있다.)

작은 그린 - 한국(중지)골프장의 최소치 기준

‘TPC소그래스’ 17번 아일랜드 홀의 그린 크기는 400㎡(가로 26m, 세로 20m)쯤이고, PGA웨스트 17번 파3(알카트래즈)홀 그린도 비슷한 크기로 아주 작다.

이에 견주어 우정힐스 13번 아일랜드 홀의 그린은 가로 25m, 세로 33m쯤이다. 여유 공간도 있어서 아일랜드 전체는 가로세로 50m 남짓한 크기다. 다른 홀들 그린의 크기는 TPC소그래스나 PGA웨스트 그린들보다 1.5배쯤으로 넓다(550~700㎡).

이 정도 그린 크기도 1990년대 초 당시의 골프장 관리 기술 환경으로 보면 모험적으로 작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투 그린을 조성해 번갈아 사용하는 것을 정답으로 알던 때였는데, 원 그린을 채택하면서 이보다 더 작게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이용자가 많아 회전율이 높은 한국 골프장 사정, 산중 지형과 페어웨이의 중지 잔디 품종(아이언 샷 ‘스핀’ 구사가 어려운) 특성 등을 감안해 최적의 그린 크기와 형태(부정형 타원과 굴곡의 정도)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그린이 이 정도쯤으로는 작아야 다이 가문 코스다운 전략성과 도전성을 띨 수 있다고, 설계자는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크기가, 그 뒤로 원 그린을 채택한 한국 골프장 그린의 최소치 기준이 된 듯하다.

(지금은 국내 골프장들이 대개 원그린으로 조성된다. 그린 크기는 800㎡ 정도가 평균인 듯 하고, 잭니클라우스GC처럼 500㎡ 남짓으로 만드는 예외도 있지만, 관리하기 편하도록 1000㎡ 넘게 만드는 곳도 있다.)

한국오픈 코스를 어렵게 셋업하는 까닭

고 이동찬 회장은 2003년 우정힐스CC로 한국오픈 장소를 옮기게 하며, ‘대회 코스 난도를 높여라’고 각별히 주문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회, 한국을 대표하는 코스이니 어렵게 세팅해야 선수들의 기량도 좋아질 수 있다”고 이 회장은 역설했고 그것이 우정힐스에서 열리는 한국오픈의 난도 설정 원칙이 됐다.

한국오픈 대회에서는 코스를 파71로 설정한다. 보통 때는 파72(7225야드)인데 한국오픈에서는 11번 파5 홀을 파4로 조정한다. 페어웨이 폭을 티샷 랜딩 존은 10~15야드, 그린 입구는 10야드 이내로 좁힌다. 세미러프는 4센티미터, 헤비러프는 10센티미터 이상을 기준으로 기른다. 선수들 공이 세미러프에 놓일 경우 0.5타, 헤비러프에서는 1타 정도 잃는다고 예측한 설정이다.

그린 스피드는 첫날 3.4m(스팀프미터 측정), 마지막 날 3.7m 정도로 관리한다. 핀 위치는 대한골프협회에서 대회 나흘동안의 난이도를 조정해 선정하는데, 전통적으로 어려운 자리에 꽂아왔다.

‘한국오픈’은 ‘대한골프협회(KGA)’가 주최한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주최하는 여타 프로 대회들과는 다르다. ‘US오픈’을 PGA투어가 아닌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최하는 것과 같다.

미국의 US오픈은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부과하는데 목표를 둔다. 골퍼들의 경기를 한계까지 압박하고 테스트하며, 기량 향상을 북돋는 대회라는 것이다.

한국오픈도 한국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치르는 데 정체성을 둔다. 한국오픈의 난도가 한국 골프의 현주소이자 한계를 노정한다.

대한골프협회 KGA의 설립·운영 목적은 ‘골프의 진흥 보급’, ‘우수 선수 육성’, ‘국제 경쟁력 제고와 위상 강화’ 등이다. 한국오픈’이 US오픈 대회와 같은 본질과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다.

영국이나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내셔널 타이틀) 골프대회를 한 군데 골프장에서 열지 않는다. 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선별한 골프장들에서 돌아가며 대회를 치른다. 특정 회사를 메인 스폰서로 앞세우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십 년 전 대한골프협회의 형편을 배려하여 고 이동찬 회장이 한국오픈을 도맡아 후원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정힐스 초창기부터 골프장 경영을 맡아오고 있는 이정윤 대표는 “돌아가신 명예회장님께서는 한국 골프 발전에 대한 소명 의식과 헌신 의지가 뚜렷한 분이었다. 우리는 그 뜻을 굳게 받들고 있다”고 말했다.

(설계자 페리 다이도 이 골프장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듯하다. 2021년 별세하기 전까지 자주 방문해 대회 준비 리모델링을 직접 지휘했다. “골프장을 잘 유지·관리해주어 고맙다” 말하며, 이동과 체류 경비 이외의 보수는 사양했다고 한다.)

‘우정’의 뜻과 ‘황소 능선’

우정힐스는 독립기념관을 품은 ‘흑성산(518m)’ 주변 구릉에 있다. 흑성산은 원래 ‘검은산’이던 이름을 한자로 적은 데서 비롯되었는데, 검은색이라는 뜻이 아니라 신령하고 거룩함을 뜻하는 우리말 ‘검’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그 기운을 마주하는 자리에 있는 골프장이다. 이 주변에서 삼일운동의 기념비적 의거가 일어나고 독립기념관이 들어섰으며, ‘한국오픈’이 열리는 골프코스가 들어선 것이 우연만은 아닐 수 있겠다.

골프장 측은 16, 17, 18번 홀 구간을 ‘실(SEAL) 코너’라고 부른다.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코스의 ‘아멘코너’를 따른 작명일 것이다. 세 홀 모두 어렵고 스코어의 변수가 많아서 승부가 뒤집어질 수 있을만한 구간이다.

특히 18번 파5 홀 티샷 낙하지점이 좁고 페어웨이 오른쪽이 OB구역이라, 가혹한 사연들이 숱하게 넘쳐나는 마지막 승부 구간이다.

하늘에서 보면 세 홀을 합친 선형이 바다표범(SEAL)처럼 보인다는 스토리 설정인데······ 설계자의 뜻인가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다소 생뚱맞은 이름이라 아쉽다. 좀 더 이야기가 어울리게 작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정’이라는 뜻깊은 이름을 연결하여 보면 어떨까 싶다. 우정牛汀은 이동찬 회장의 아호로, ‘물가의 소’라는 뜻이니 여유롭고자 하는 마음과 소처럼 우직하겠다는 한국 정서를 품은 이름이다.

나는 졸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첫째권 우정힐스 편에서, “황소 등줄기 같은 한국미가 있다”라고 썼다. 골프 코스는 (다이 가문의) 서구적인 도전성으로 생동하고 있으나, 그것을 품은 땅은 한국 산야의 풍정을 다감하게 품고 있다. 회화로 빗대자면 조선 중기의 선비 화가 김식(金埴)의 소 그림(枯木牛圖)처럼 여유롭다가, 이중섭의 황소 그림처럼 생명감 넘치게 격동하기도 한다.

땅의 이야기가 닿지 않는 바다표범보다는 ‘황소’가 우정힐스 마지막 승부 구간의 주인이 되기에 어울린다.

이동찬 회장은 생전에 “한국오픈을 죽을 때까지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오픈이 우정힐스에서 열리는 한 그는, 그 뜻의 화신으로 살아있다.

 

류석무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류석무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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